그림 / 권순창
녹슨 도끼의 시 / 손택수
예전의 독기가 없어 편해 보인다고들 하지만
날카로운 턱선이 목살에 묻혀버린
이 흐리멍덩이 어쩐지 쓸쓸하다
가만히 정지해 있다 단숨에 급소를 낚아채는 매부리처럼
불타는 쇠번개 소리 짝, 허공을 두쪽으로 가르면
갓 뜬 회처럼 파들파들 긴장하던 공기들, 저미는 날에 묻어나던 생기들
애인이었던 여자를 아내로 삼고부터
아무래도 내 생은 좀 심심해진 것 같다
꿈을 업으로 삼게 된 자의 비애란 자신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
닦아도 닦아도 녹이 슨다는 것
녹을 품고 어떻게 녹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녹스는 순간들을 도끼눈을 뜬 채 바라볼 수 있을까
혼자 있을 때면 이얍, 어깨 위로 그 옛날 천둥 기합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오기도 하는 것인데, 피시식
알아서 눈치껏 소리 죽인 기합에는 맥이 빠져 있기 마련이다
한번이라도 꽉 짜인 살과 살 사이의 틈에 제 몸을 끼워맞추고
누군가를 단숨에 관통해본 자들은 알리라
나무는 저를 짜갠 도끼날에 향을 묻힌다
도끼는 갈고 갈아도 지워지지 않는 목향을 그리워하며 기꺼이 흙이 된다
뒤꿈치 굳은살 같은 날들 먼지 비듬이라도 날리면
온몸이 근질거려 번쩍 공중으로 들어올려지고 싶은 도끼
손택수 시집 /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
"예전의 독기가 없어 편해 보인다고들 하지만
날카로운 턱선이 목살에 묻혀버린
이 흐리멍덩이 어쩐지 쓸쓸하다"
위의 문장에서 나이가 들면서 밀려오는 비애감이 느껴진다.
시인은 도끼라는 물건을 은유로 표현했다.
도끼는 농경 사회의 도구지만 더 이상 진화를 하지 못하고 녹이 쓸어 있다.
녹이란 우리의 나이 같아서 원하든 원치 않든 녹슬게 되어있다.
녹은 닦아도 어느 순간 또 녹이 슨다
이 시의 저변에 깔린 정서는 중년에 이른 자가 느끼게 되는 상실감 고독이다.
도끼를 내리치던 근육의 힘도 빠지고 세월은 어느새 날선 검을 무디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쪼갠 나무들에게서는 향이 난다
도끼 끝에 남아있는 향을 기억하며 어느덧 중년에 이른 시인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 시를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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