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자작시

소리를 꿰매는 법 / 이 효

푸른 언덕 2023. 1. 20. 18:47

그 림 / 송인관

소리를 꿰매는 법 / 이 효 

겨울바람이 쿨럭이면

트고 갈라진 입술을 비좁은 창문 틈에 대고서

달동네는 밤새 휘파람을 불었다 

 

손수레에 쪽방을 끌고 가는 노파 

고물상으로 가는 길, 바퀴 터지는 소리 사이로

지난겨울 맹장 터진 어린 손주의 비명이 걸어 나온다

어미는 어디로 갔는지 성냥갑 닮은 쪽방에 

아이 하나 촛농처럼 식어간다

 

자원봉사자들 연탄 나르던 비탈진 골목길

재개발 소식에 이웃들 불꽃 꺼지듯 사라지고

반쯤 열린 대문 앞 빨간 고무대야 속에는 

지난여름을 박제시킨 꽃들이

떠난 이웃의 말라버린 이름을 솎아낸다

 

이른 새벽에 파지 줍는 세월은 

바늘귀에 침묵을 꿰어 기울어가는 생을 덧대는 일이다

조각보처럼 이어온 날짜들이 

노파의 입가에 주름처럼 세 들어 산다 

당고개역 잡화가게 정 씨 허리가 담뱃갑처럼 구겨지더니

바닥에 깔렸던 찢긴 시름 몇 장 가볍게 들어 유모차에 실어준다

 

이 길 저 길 

먼지와 동행한 그녀의 캄캄한 발이 잠깐 현기증을 앓고

남루한 신발 속 추레한 세월은 실어증에 걸린 지 오래다

누군가 버린 낡은 폐비닐처럼 

노파의 허벅지를 간신히 쥐고 있는 남루한 살갗을

면도날 같은 바람이 휙, 긋고 지나간다 

 

해가 저물자 

고물상 저울 위로 놓친 할머니 기침 소리가 

눈금처럼 파르르 떨렸고

대문 앞에 버려진 싸늘한 연탄재처럼 저체온증에 걸린 차가운 달이 

마을의 빈방 하나 수소문 중이다 

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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