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루마니아 풍습 / 황유원

푸른 언덕 2022. 10. 27. 19:16

 

그림 / 임이정

 

 

 

 

루마니아 풍습 / 황유원

 

 

루마니아 사람들은 죽기 전 누군가에게

이불과 베개와 담요를 물려준다고 한다

골고루 밴 살냄새로 푹 익어 가는 침구류

단단히 개어 놓고 조금 울다가

그대로 간다는 풍습

죽은 이의 침구류를 물려받은 사람은

팔자에 없던 불면까지 물려받게 된다고 한다

꼭 루마니아 사람이 아니더라도

죽은 이가 꾸다 버리고 간 꿈 냄샐 맡다 보면

너무 커져 버린 이불을, 이내 감당할 수 없는 밤은 오고

이불 속에 불러들일 사람을 찾아 낯선 꿈 언저리를

간절히 떠돌게 된다는 소문

누구나 다 전생을 후생에

물려주고 가는 것이다 물려줘선 안 될 것까지

그러므로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이들 중 누군가는 분명

먼저 이불 속에 묻히고

이제는 몇 사람이나 품었을지 모를

거의 사람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 침구류를 가만히 쓰다듬다가

혼자서 이불을 덮고 잠드는 사람의 어둠

그걸 모두들 물려받는다고 한다

언제부터 시작된 풍습인지

그걸 아무도 모른다

 

 

 

 

* 황유원시집 / 세상의 모든 최대화 <믿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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