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안부 / 나호열

푸른 언덕 2022. 10. 7. 17:47

 

 

그림 / 전계향

 

 

 

 

 

안부 / 나호열

 

 

안부를 기다린 사람이 있다

안부는

별일 없냐고

아픈 데는 없냐고 묻는 일

안부는

잘 있다고

이러저러하다고 알려주는 일

산 사람이 산 사람에게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고백하는 일

안부를 기다리는 사람과

안부를 묻는 사람의 거리는

여기서 안드로메다까지 만큼 멀고

지금 심장의 박동이 들릴 만큼 가깝다

꽃이 졌다는 슬픔 전언은 삼키고

꽃이 피고 있다는 기쁨을 한아름 전하는 것이라고

안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날마다 마주하는 침묵이라고

안부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안부는 낮이나 밤이나

바가 오나 눈이 오나 가리지 않고

험한 길 만 리 길도 단걸음에 달려오는

작은 손짓이다

어두울수록 밝게 빛나는

개밥바라기별과 같은 것이다

평생 동안 깨닫지 못한 말뜻을

이제야 귀가 열리는 밤

안부를 기다리던 사람이

내게 안부를 묻는다

기다림의 시간이 구불구불

부끄럽게 닿는다

 

 

 

 

 

*나호열 시집 / 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