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이율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 최금진
혓바닥으로 붉은 장미를 피워 물고
조심조심 담장을 걷는
언어의 고양이
깨진 유리병들이 거꾸로 박힌 채
날 선 혓바닥을 내미는 담장에서
줄장미는
시뻘건 문장을 완성한다
경사진 지붕을 타 넘으면
세상이 금세 빗면을 따라 무너져 내릴 것 같아도
사람은 잔인하고 간사한 영물
만약 저들이 쳐놓은 포회틀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구름으로 변장하여 빠져나올 것이다
인생무상보다
더 쉽고 허무한 비유는 없으니
이 어둠을 넘어가면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달덩이가 있다
거기에 몸에 꼭 맞는 둥지도 있다
인간에게 최초로 달을 선사한 건 고양이
비유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
흰 접시 위에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 올려놓는다
언어는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하늘로 달아나고
마을은 접시처럼 환하다
가장 높은 지붕 위엔 고양이 한 마리
발톱의 가시로 달덩이 희롱하고
입으로는 붉은 장미꽃들을 활짝 피워낸다
야옹, 나는 장미다
계간 <문예바다> 2017년 가을호 발표
*최금진 / 충북 제천 출신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2001년 <창작과 비평> 신인시인상수상
2019년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 시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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