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 최금진

푸른 언덕 2022. 8. 26. 17:37

 

그림 / 이율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 최금진

 

 

혓바닥으로 붉은 장미를 피워 물고

조심조심 담장을 걷는

언어의 고양이

깨진 유리병들이 거꾸로 박힌 채

날 선 혓바닥을 내미는 담장에서

줄장미는

시뻘건 문장을 완성한다

경사진 지붕을 타 넘으면

세상이 금세 빗면을 따라 무너져 내릴 것 같아도

사람은 잔인하고 간사한 영물

만약 저들이 쳐놓은 포회틀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구름으로 변장하여 빠져나올 것이다

인생무상보다

더 쉽고 허무한 비유는 없으니

이 어둠을 넘어가면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달덩이가 있다

거기에 몸에 꼭 맞는 둥지도 있다

인간에게 최초로 달을 선사한 건 고양이

비유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

흰 접시 위에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 올려놓는다

언어는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하늘로 달아나고

마을은 접시처럼 환하다

가장 높은 지붕 위엔 고양이 한 마리

발톱의 가시로 달덩이 희롱하고

입으로는 붉은 장미꽃들을 활짝 피워낸다

야옹, 나는 장미다

 

 

 

계간 <문예바다> 2017년 가을호 발표

 

 

 

*최금진 / 충북 제천 출신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2001년 <창작과 비평> 신인시인상수상

2019년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 시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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