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그럴 때가 있다 / 이정록

푸른 언덕 2022. 8. 2. 18:19

 

그림 / 정자빈

 

 

 

 

그럴 때가 있다 / 이정록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

 

그럴 때가 있다.

 

한숨 주머니를 터트리려고

가슴을 치다가, 가만 돌주먹을 내려놓는다.

어디에선가 사나흘 만에 젖을 빨다가

막 잠이든 아이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촛불이 깜박,

까만 심지를 보여 주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

 

 

 

 

이정록 시집 / 그럴 때가 있다 <창비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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