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노인 보호 구역 / 이희명

푸른 언덕 2022. 7. 30. 18:32

 

그림/ 강애란



노인 보호 구역 / 이희명



미군부대 뒷길
눈 감아도 보이는 크고 붉은 글씨
'노인보호구역'
낙엽이 그 길을 걷고 있다
몸 반쪽에는 이미 겨울이 와 버린
가랑잎 같은 한 목숨이 흘림체로 걷고 있다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흔들어 물속  길을 찾듯
뻣뻣한 팔로 허공에 노를 저으며
물풀 같은 그림자 따라 걷는다
체본 없이 완성한 그의 글씨체
벼루도 먹도 없어
맨몸으로 길바닥에 쓸 수밖에 없었던 그의 이력서
깊게 팬 이랑마다 수북이 쌓인 낙엽
걸음걸음 굽은 그림자
유서 같은 긴 편지를 쓰면서 간다



*2021 매일시니어문학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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