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 송세라
미래가 쏟아진다면 / 김소연
나는 먼 곳이 되고 싶다
철로 위에 귀를 댄 채
먼 곳의 소리를 듣던 아이의 마음으로
더 먼 곳이 되기 위해선 무얼 해야 할까
꿈속이라면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악몽을 꾸게 될 수도 있다
몸은 자꾸 나침반 바늘처럼 떨리는 아이가 되어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봐 괴로워하면서
몸이 자꾸 깃발처럼 펄럭이는 아이가 되어
어리석은 사랑에 빠졌을까 봐 괴로워하면서
무녀리로 태어나 열흘을 살다 간
강아지의 마음으로
그 뭉근한 체온을 안고 무덤을 만들러 가는
아이였던 마음으로
꿈에서 깨게 될 것이다
울지 마, 울지 마
라며 찰싹찰싹 때리던 엄마가 실은
자기가 울고 싶어 그랬다는 걸
알아버린 아이가 될 것이다
그럴 때 아이들은 여기에 와서
모르는 사람에게 손을 흔든다
꿈이라면 잠깐의 배웅이겠지만
불행히도 꿈은 아니라서 마중을 나온 채
그 자리에서 어른이 되어간다
마침내 무엇을 기다리는지 잊은 채로
지나가는 기차에 손을 흔들어주는
새까만 아이였던 마음으로
지금 나는 지나가는 기차가 되고 싶다
목적 없이도 손 흔들어주던 아이들은
에디에고 있다는 걸 알고 싶다
김소연 시집 / 수학자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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