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생명보험 / 김기택

푸른 언덕 2022. 2. 19. 20:07

그림 / 윤지원

 

생명보험 / 김기택

 

병원마다 장례식장마다 남아도는 죽음,

밥 먹을 때마다 씹히고

이빨 사이에 고집스럽게 끼어 양치질해도

빠지지 않는 죽음이

오늘 밤은 형광등에 다투어 몰려들더니

바닥에 새카맣게 흩어져 있다.

삶은 언젠가 나에게도 죽음 하나를 주리라.

무엇이든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내 두 손은

공짜이므로 넙죽 받을 것이다.

무엇이든 손에 들어오는 것은 일단 움켜쥐고 볼

일이다.

걱정은 나중에 해도 된다.

그렇잖아도 죽음에 투자하라고

부동산 투자보다 훨씬 안전하고 수익도 높다고

투자만 해놓으면 다리 쭉 펴고 맘 놓고 죽을 수

있다고

보험설계사가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죽음에는 다리들이 참 많이 달려 있다.

이젠 길이 땅에서 하늘로 바뀌었다는 듯

하나같이 다리들을 하늘을 향해 높이 쳐들고 있다.

세상 모든 죽음을 낱낱이 겪어 알고 있으면서도

허공은 아무 대책이 없다

공짜였던 죽음이 언제부터 선불로 바뀌었나요?

선불이 아니라, 아버님, 가족에 대한 사랑이에요.

보장성과 수익성이 풍부한 사랑이요.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 견적 뽑으면 다 나와요

죽음에다 돈과 사랑이 쏟아져 나오는 투자를 하고 나면 어서 죽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해질 거예요.

 

시집 / 갈라진다 갈라진다 (2014)

<문학과지성사>

 

 

<김기택 시인>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 영문과와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곱추>당선

*김영수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지훈문학상 등을 수상함

*현재 경희 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재직중

*시집 / <갈라진다 갈라진다>

<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소><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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