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그래서 그랬다 / 임솔아

푸른 언덕 2022. 2. 21. 20:27

그림 / 안호범

그래서 그랬다 / 임솔아

 

살구꽃은 무섭다. 하루 아침에 새까매진다.

가로등 아래서 살점처럼 시뻘겠는데.

살아가는 것이 죽어가는 것보다 무섭다.

유리컵 속에 가둔 말벌이 죽지는 않고

죽어만 간다.

잠그지 않은 가스밸브처럼 가만히 누워 있는

내가 무섭다. 아무도 없어서 무섭고 누군가

있을까 봐 더 무섭다.

엄마한테 할 말 없니

엄마의 그 말이 내 말문을 닫는다.

할 말이 없어서 무섭고

할 말이 생길까 봐 더 무섭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질 때와 같이 무서웠던

것들이 시원하게 풀려나간다. 눈물도 안 나던

순간에 눈물이 갑자기 끝나는 순간에 무섭다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에 한 번도 믿어보질

못해서 쉽게 믿어버릴까 봐서

술 취한 친구의 눈빛과 술 안 취한 친구의 눈빛과

그래서 그랬다는 말과

아빠의 검지가 무섭다. 한 마디만 남아서 손톱이

없어서 손톱이 없는데도 가려운 데를 긁어서

 

시집 /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문학과 지성사>

 

<임솔아 시인>

*2013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

*2015년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

장편소설 <최선의 삶>

*2017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첫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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