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화분에 물주기
이근화
어디에서 날아온 씨앗일까
누가 파 온 흙일까
마시던 물을 일없이 빈 화분에 쏟아부었더니
며칠 지나 잎이 나온다
욕 같다
너 내게 물 먹였지
그러는 것 같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그러면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볕이 잘드는 곳으로 옮겨 주었다
몰라봐서 미안하다
그런데 끝까지 모르겠다
너 누구니, 아니 댁은 누구십니까
잎이 넓적하고 푸르다
꽃 같은 것도 피울 거니
그럼 정말 내게 욕하는 거야
안녕하십니까, 묻지 마 내게
당황스럽잖아 나더러 어쩌라고
계속 물을 주어야 한다
불안하면 지는 거다
그런데 더 주어야 하나 덜 주어야 하나
그늘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 하는 거다
너는 어디서 왔니
족보를 따지는 거다
상상하는 거다
너 아무것도 아니지
나의 몽상이구나
나란 망상이구나
죽고 없는 거구나
잘 살기란 온전하기란
불가능한 거구나
빈 화분에 물을 주며
나는 하루하루 시들어 간다
최선을 다해 말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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