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나무 8

​살아 있다는 것 / 드니스 레버토프

그림 / 박혜숙 ​ ​​ ​ 살아 있다는 것 / 드니스 레버토프 ​ ​ ​ 잎사귀와 풀잎 속 불이 너무나 푸르다, 마치 여름마다 마지막 여름인 것처럼 ​ 바람 불어와, 햇빛 속에 전율하는 잎들, 마치 모든 날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연약한 발과 긴 꼬리로 꿈꾸는 듯 움직이는 붉은색 도룡뇽 ​ 너무 잡기 쉽고, 너무 차가워 손을 펼쳐 놓아준다, 마치 ​ 매 순간이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 ​ ​ ​ 시집 / 마음 챙김의 시 ​ ​ ​

단풍 드는 날 / 도 종 환

그림 / 민 경 윤 ​ ​ ​ ​ 단풍 드는 날 / 도 종 환 ​ ​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 제 삶이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 방하착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 ​ ​ *방하착(放下着)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아라" 마음을 비우다라는 뜻의 불교 용어 ​ ​ ​ 도종환 시집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 ​

꽃의 이유 / 마 종 기

그림 / 박 송 연 ​ ​ ​ ​ 꽃의 이유 / 마 종 기 ​ ​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 꽃이 지는 이유는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소리 ​ ​ ​ ​ ​ *1939년 일본 출생 *서울대 대학원 졸업 *1959년 현대문학 시 등단 *시집 *수상경력 -한국문학 작가상 -편운 문학상 -이산 문학상 -동서 문학상 ​ ​ ​ ​ ​

대결 / 이 상 국

그림 / 김 정 수 ​ ​ ​ ​ 대결 / 이 상 국 ​ ​ ​ ​ 큰 눈 온 날 아침 부러져나간 소나무를 보면 눈부시다 ​ 그들은 밤새 뭔가와 맞서다가 무참하게 꺾였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공손하게 몸을 내맡겼던 게 아닐까 ​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눈의 무게를 받으며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저 빛나는 자해(自害) 혹은 아름다운 마감 ​ 나는 때때로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 ​ ​ 이상국 시집 / 국수가 먹고 싶다 ​ ​ ​

바람의 시간들 / 이규리

그림 / 안 효 숙 ​ ​ ​ 바람의 시간들 / 이규리 종일 바람 부는 날, 밖을 보면 누군가 떠나고 있는 것 같다 바람을 위해 허공은 가지를 빌려주었을까 그 바람, 밖에서 부는데 왜 늘 안이 흔들리는지 종일 바람을 보면 간간이 말 건너 말을 한다 밖으로 나와, 어서 나와 안이 더 위험한 곳이야 하염없이 때때로 덧없이 떠나보내는 일도 익숙한 그것이 바람만의 일일까 이별의 경험이 이별을 견디게 해주었으니 바람은 다시 바람으로 오리라 종일 바람 부는 날, 밖을 보면 나무가 나무를 밀고 바람이 바람을 다 밀고 ​ ​ ​ 이규리 시집 / 이럴 땐 쓸쓸해도 돼 ​ ​ ​

숲, 나무에서 배우다 / 김 석 흥

그림 : 신 은 봉 ​ ​ ​ 숲, 나무에서 배우다 / 김 석 흥 ​ ​ ​ 숲에 사는 나무는 박애주의자다 생김새가 다르다고 다투기는 하나 미워하지 않는다 키가 좀 작다고 허리가 굽었다고 업신여기지 않는다 언제나 주어진 자리에 서 있을 뿐 결코 남의 자리를 욕심내지 않는다 숲에 들어서면 가슴이 환해지는 이유이다 ​ 숲을 지키는 나무들은 거룩한 성자다 산새들이 몸통 구석구석을 쪼아 대고 도려내도 아픈 기색 보이지 않는다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잠을 설쳐도 끝내 쓴소리 한 번 내지 않고 폭설에 여린 팔 하나쯤 부러져도 오르지 끝 끝모르는 사랑으로 품어 안는다 숲에 들어서면 영혼이 맑아지는 이유다 ​ ​ ​ 시집 / 천지연 폭포 (김석흥 시인) ​ ​ 그림 : 김 연 희 ​ ​ ​ ​ ​ ​ ​ ​

연습이 필요할 때 / 이 남 우

연습이 필요할 때 / 이 남 우 ​ 개불알꽃 사는 일 연습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일 연습이 필요하다 헤어지는 일 연습이 필요하다 죽는 일 빼고 모두 연습이 필요하다 ​ 종지나물(미국 제비꽃) 소나기 내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가 달맞이꽃 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가 물 흐르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한가 바람 부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한가 ​ 로도히폭시스 (설란) ​ ​ 사는 일 한 묶음이면 연습이 필요하지 않겠지 사랑하는 일 한번으로 보면 연습이 필요하지 않겠지 ​ ​ 안개꽃 (숙근 안개초) ​ ​그런데 우리는 항상 연습한다 몸으로 머리로 그리고 되먹지 못한 이성으로 연습의 끝이 어딘지 모르면서 ​ (다만 이미 가버린 시간이라는 사실만 알 뿐) ​​ 노란 민들레 ​ 연습이 필요할 때 / 이 남 우 ​ ​ 사는 일 ..

무제 2 / 이 남 우

그림 : 천 지 수 ​ ​ 무제 2 / 이 남 우 ​ ​ 어머니 소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 윤사월 봄은 왜 그리 깁니까 보리는 파랗게 패어 눈을 유혹하지만 오월이 오기 전에는 벨 수 없는 노릇 어린 자식 밥그릇은 커만 가는데 어머니는 보리밭 머리에서 송홧가루만 이고 있습니다 ​ 어머니 소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 봄 햇살에 더욱 깊어 가는 주름은 차라리 기쁜 역사라하고 일 많은 오월에 보리타작 있어 서럽도록 기쁘지요 어린 자슥 밥그릇 채어줄 생각에 송화는 더 이상 꽃이 아닙니다 ​ 오늘, 소나무 끝마디마다 새순이 돋고 있습니다 어머니 ​ ​ 이남우 시집 : 나 무 ​ *이남우 시인은 2000년 십여 년 강화문학창립회원 으로 활동하다 현재는 치악산 원주에서 시문학 '시연' 동인으로 활동한다. 국립방송통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