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2022/11/18 2

하모니카 부는 오빠 / 문정

그림 / 정전옥 하모니카 부는 오빠 / 문정 오빠의 자취방 앞에는 내 앞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사철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아래에는 평상이 있고 평상 위에서는 오빠가 가끔 혼자 하모니카를 불죠 나는 비행기의 창문들을 생각하죠, 하모니카의 구멍들마다에는 설레는 숨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이륙하듯 검붉은 입술로 오빠가 하모니카를 불면 내 심장은 빠개질 듯 붉어지죠 그때마다 나는 캄보디아를 생각하죠 양은 밥그릇처럼 쪼그라들었다 죽 펴지는 듯한 캄보디아 지도를 생각하죠, 멀어서 작고 붉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 오빠는 하모니카를 불다가 난기류에 발목 잡힌 비행기처럼 덜컹거리는 발음으로 말해주었지요, 태어난 고향에 대해, 그곳 야자수 잎사귀에 쌓이는 기다란 달빛에 대해, 스퉁트랭, 캄퐁참, 콩퐁솜 등 울퉁불퉁 돋아..

문학이야기/명시 2022.11.18 (10)

매듭 / 장흥진

그림 / 정미경 매듭 / 장흥진 택배로 온 상자의 매듭이 풀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방식으로 단단히 묶인 끈 보다못한 아이가 칼을 건넨다 늘 지름길을 지향하는 칼 좌석표가 있다는데 일부러 입석표를 끊어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서서 가시며 그 근소한 차액을 남기시던 어머니는 평생 지름길을 모르는 분이었다 상자속엔 가을걷이한 곡식과 채소가 들어있을 것이다 꾹꾹 눌러도 넘치기만 할 뿐 말끔히 닫히지 않는 상자를 가로 세로 수십 번 이 비닐끈으로 동여 매셨을 어머니의 뭉툭한 손마디가 떠올라 칼을 가만히 내려 놓는다 힘이 들수록 오래 기도하시던 어머니처럼 무릎을 꿇고 밤이 이슥해지도록 상자의 매듭과 대결한다 이는 어쩌면 굽이진 어머니의 길로 들어가 아득히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린 날에는 이..

문학이야기/명시 2022.11.1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