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2021/10/26 2

가을 사랑 / 도 종 환

그림 / 김 정 수 ​ ​ ​ 가을 사랑 / 도 종 환 ​ ​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는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 ​ 도종환 시집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 ​

바구미를 죽이는 밤 / 문성해

그림 / 문 경 조 ​ ​ ​ ​ 바구미를 죽이는 밤 / 문성해 ​ ​ ​ 처음엔 작은 활자들이 기어 나오는 줄 알았다 신문지에 검은 쌀을 붓고 바구미를 눌러 죽이는 밤 턱이 갈라진 바구미들을 처음에는 서캐를 눌러 죽이듯 손톱으로 눌러 죽이다가 휴지로 감아 죽이다가 마침내 럭셔리하게 자루 달린 국자로 때려 죽인다 죽음의 방식을 바꾸자 기세 좋던 놈들이 주춤주춤, 죽은척 나자빠져 있다가 잽싸게 도망치는 놈도 있다 놈들에게도 뇌가 있다는 것이 도무지 우습다 ​ 혐오의 죄책감도 없이 눌러 죽이고 찍어 죽이고 비벼 죽이는 밤 그나저나 살해가 이리 지겨워도 되나 고만 죽이고 싶다 해도 기를 쓰고 나온다 이깟 것들이 먹으면 대체 얼마를 먹는다고 쌀 한 톨을 두고 대치하는 나의 전선이여 아침에는 학습지를 파는 전화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