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김 수 영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오는 거리에는
사십 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죽을 만큼 사랑한다는 것과 죽일 만큼 미워하는 마음이
함께 공존한 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온 김수영, 아내는 이종구
(선린상고 선배)랑 살림을 차렸다.
이종구가 죽자 김수영 곁으로 돌아왔다.
그후부터 아내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이 시를 쓰고난 후에 학대가 끝났다.
폭력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더 이상 사랑이란 감정도
미움이란 감정도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더니, 이제 미움마저 끝났다.
진짜 미워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을 희생해야한다.
미움마저 끝나버리더니 아내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연에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온
일이다"라고 표현했다.
김수영 시인 약력
1921년 서울 출생
연희전문학교 중퇴
1945년 시 "묘정의 노래" 등단
평화신문사 문화부 차장
2001 금관문화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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