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고흐의 달

푸른 언덕 2020. 4. 12. 19:49


                                        * 고흐의 방 (수채화 처음 배울 때 그린 그림입니다)


고흐의 달    /  구석본


  고흐가 귀를 버렸다.
  '사랑'을 말하는 속삭임이 '사랑'을 잃어버렸고
  '슬픔'이라는 목소리가
  '슬픔'으로 들리지 않았을 때
  고흐는 귀를 잘라 허공으로 던졌다.


  진실은 그늘처럼 언어(言語) 안에 있는 법.


  오늘밤, 허공에 걸린 고흐의 귀 안에서 그늘이던 언어(言語)들이 일제히 빛으로 쏟아져 지상을 밝힌다.

  꽃은 꽃의 그늘로 꽃다워지고 갈참나무는 자신을 지우는 그늘로 갈참나무로 꿋꿋하다.

  말이 목소리를 버린 다음 빛으로 쏟아져 지평선의 그늘을 구부려 밝히고 눈부신 한낮,

  빌딩의 그늘까지 환하게 밝혀 적막으로 쌓는다.


  그대 이 순간, 영혼 안에 숨어 있는 목소리로 다시 사랑을 말하라.
  그러면 사랑은 스스로 빛이 되어
  슬픔까지 밝히고
  끝내 잠들지 못하는 사람의 눈물 속으로 젖어든다.
  밤의 적막은 더욱 깊어져
  지상의 허공이 지평선 그늘로 이어지고,
  공중의 허공도 공중의 그늘로 스며들 때
  오늘밤 일제히 빛으로 울려오는
  '외로워'
  그대의 영혼을 밝히는 그늘의 말씀.


  교교한 달밤이다.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산조각  (0) 2020.04.14
이상난동  (0) 2020.04.13
재로 지어진 옷   (0) 2020.04.11
누가 울고 간다   (0) 2020.04.07
고금도 아리랑  (0) 2020.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