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재로 지어진 옷

푸른 언덕 2020. 4. 11. 20:29



 재로 지어진 옷  /  나희덕

흰나비가 소매도 걷지 않고
봄비를 건너간다
비를 맞으며 맞지 않으며

그 고요한 날갯짓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격렬함이 깃들어 있어
날개를 둘러싼 고운 가루가
천 배나 무거운 빗방울을 튕겨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날개는 몸을 태우고 남은 재이니

제 마음 몇 배의 돌덩이를 굴려 올리면서도
걸음이 가볍고 가벼운 저 사람
슬픔을 물리치는 힘 고요해
봄비 건너는 나비처럼 고요해

비를 건너가면서 마른 발자국을 남기는
그는 남몰래 가졌을까

옷 한 벌, 흰 재로 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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