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이기전
전화 / 최금진
탯줄을 자르고 어른이 된 후
플러그 빠진 콘센트처럼 허전한 배꼽에
애인의 배꼽도 대어보고
실연의 칼끝도 대어보았지만
전화기만큼 딱 맞는 건 찿지 못했다
꼬불꼬불한 탯줄을 달고
인큐베이터 같은 박스 안에서 잠들어 있던
전화기를 꺼내며 두근거리던 그때
따르릉, 첫울음과 함께
빈방에 가득 울리던 세상과의 연결음들을
한밤에도 얼마나 기다렸는지
사람들과 연결, 연결되며 느끼는
아흐, 세상은 양수같이 가슴 출렁이는 곳
무참히 깨진 기억들보다 더 많은 번호들이
손에 있는 한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
낙태되지 않는다는 것
오늘밤에도 오지 않는 전화를
공복의 허전한 배 위에 올려놓고 잠을 청한다
최금진 시집 / 새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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