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봉합된 세상 / 김명희

푸른 언덕 2023. 2. 27. 18:48

그림 / 신종섭

봉합된 세상 / 김명희

계곡 속,

뜨겁게 달아오른 빨간 체온들이 물속으로 뛰어든다

수면 아래서 물 밖 기억을 들출 때에는

봉합된 호흡의 분량이 필요하다

미량의 호흡 속에서 되살아나는 지난날들의 청춘과 실연들

규명되지 않은 불규칙한 혈압이 적나라하게 재생된다

폐 속에 갇힌 세상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에 뜯기어 내 몸이 질식되는 동안

바깥 시간들은 어떤 인생들을 호흡하고 있을까

다시 물 밖으로 고개를 들자

게으르고 물컹한 공기 속에선

구름을 놓친 소나기 하나, 세속을 빠르게 지나치고 있었고

모든 휴식은 구리빛이었다

 

*시작 메모 : 이 시는 계곡에서 미역을 감는 순간을 표현했다

 

김명희 시집 / 화석이 된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