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송지윤
황태마을 덕장에서 / 권수진
<제24회 박인환 추모백일장 차상>
눈 덮인 진부령 고갯길 너머 용대리 황태마을
덕장 안 명태들이 피아노 건반처럼 매달려 있다
시베리아 북서풍에 맞서 두 눈을 부릅뜬 채
아가리 크게 벌려 목청을 가다듬는 명태 두름
매서운 바람이 누르는 건반 소리에 박자를 맞춰
허공을 향해 일제히 트위스트 춤을 춘다
추위를 즐기는 명태들의 모습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등록금 천만 원 시대를 살아가는 힘겨운 세상
밤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해장국 한 그릇이 되고 싶었다던 아버지
우리는 그의 몸뚱이를 발기발기 찢어서
뜨거운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 국물을 훌훌 마시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눈발이 휘날리는 덕장 건조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런 빛깔로 맛깔스레 익어가는 아버지가 걸려 있다
몸피를 잃을수록 구수한 맛이 베어나는 황태처럼
젊은 날 자식들 위해 오장육부를 다 뜯어내고
요양병원 병상에 누워 비쩍비쩍 말라가는 몸
곤히 잠든 아버지의 퇴화된 지느러미를 조심스레 만져본다
아버지 오늘도 동해의 거친 물살을 가로지르며
마음껏 바다를 유영하던 시절의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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