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7월의 종교 / 정와연

푸른 언덕 2022. 11. 16. 20:12

 


그림 / 김소영

 

 

 

7월의 종교 / 정와연

 

칠월, 콩밭에 무릎을 꿇고

어머닌 기도중이다

늙어 쭈그려 앉기 힘든 무릎

그 무릎을 꿇고 콩밭을 맨다

넓고 긴 고랑은 한여름 고난의 십자가

푸른 강대상 앞에 땀을 뚝뚝 흘리는 기도다

잡초를 매고 북을 돋우고 순을 자르며

온몸으로 흘리는 기도

 

밭고랑은 어머니의 종교다

무릎을 혹사당한 예배다

 

꿈속에서 종소리를 들었는지

새벽잠 깨워 나서는 어머니의 예배당

개척교회 목사님이 심방을 오시는지

무릎 꿇고 엎드려

하루 종일 청소중이다

 

뿌리가 박테리아와 어머니의 기도가 공생하는지

어머니의 기도를 빨아들이고

남은 기도를 저장한 뿌리혹주머니가 우툴두툴하다

 

칸칸이 맺힌 잘 여문 콩알들은

어머니 땀방울이고 무릎 닳은 기도의 응답이다

그래서 몇 년 묵은 장맛은

헌신한 무릎의 맛이 난다

고랑처럼 길고 긴 소실점의 맛이다

 

가을, 딱딱한 꼬투리를 벌리는 콩 포기들

어머니의 여름성경학교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정와연 시인>

*전남 화순 출생

*숭의여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3년 <부산일보>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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