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설탕 / 박소란

푸른 언덕 2022. 10. 3. 19:10

 


그림 / 구자숙

 

 

 

 

설탕 / 박소란 

 

 

커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오 어쩌면

 

테이블 아래

새하얀 설탕을 입에 문 개미들이 총총총

기쁨에 찬 얼굴로 지나갑니다 개미는

다정한 친구입니까 애인입니까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

달콤한 입술로 내가 가본 적 없는

먼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당신을 위해

오늘도 나는 단것을 주문하고 마치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웃고 재잘대고 도무지 맛을 알 수 없는

불안이 통째로 쏟아진 커피를 마시며

 

단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다정을 흉내 내는 말투로

한번쯤 묻고도 싶었는데

 

언제나처럼 입안 가득 설탕만을 털어넣습니다

그런 내게 손을 내미는 당신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오 제발 다정한

당신의 두 발, 무심코

어느 가녀린 생을 우지끈 스쳐가고

 

 

 

 

 

박소란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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