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잠 / 류시화

푸른 언덕 2022. 9. 29. 19:40

 


그림 / 박은영

 

 

 

 

 

잠 / 류시화

 

 

 

나를 치유해 준 것은 언제나 너였다

상처만이 장신구인 생으로부터

엉겅퀴 사랑으로부터

신이 내린 처방은 너였다

옆으로 돌아누운 너에게 눌린

내 귀, 세상의 소음을 잊고

두 개의 눈꺼풀에 입 맞춰

망각의 눈동자를 봉인하는

너, 잠이여

 

나는 다시 밤으로 돌아와 있다

밤에서 밤으로

부재하는 것이 존재하는 시간으로

얼굴의 윤곽을 소멸시키는 어둠 속으로

나라고 하는 타인은

불안한 예각을 가지고 있다

잠이 얕은 혼을

내가 숨을 곳은 언제나 너였다

가장 큰 형벌은 너 없이 지새는 밤

네가 베개를 뺄 때

나는 아직도 내가 깨어 있는 이곳이 낯설다

때로는 다음 생에 눈뜨게도 하는

너, 잠이여

 

 

 

 

 

* 류시화 제3시집 /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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