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바람의 말 / 마종기

푸른 언덕 2022. 1. 7. 18:04

그림 / 원 효 준

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는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시집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마종기 시인은 동화작가 마해송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 무용과 박외선 사이에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성장해서 의과대학 재학 시절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그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40여 년간 방사선과 전문의로 지내면서 시를 써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