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경유지에서 / 채윤희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푸른 언덕 2022. 1. 6. 20:14

작품 / 윤 경 주

 

경유지에서 / 채윤희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중국 부채를 유럽 박물관에서 본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나는

딱정벌레 날개 위에 누워 있다

한때 공작부인의 소유였다는 황금색 부채

예수는 얼핏 부처의 형상을 하고 있다

약속한 땅은 그림 한 뼘

물가로 사람을 인도한다는 뿔 달린 짐승은 없다

한 끝이 접혔다가 다시 펼쳐진다

떨어진 금박은 지난 세기 속에 고여 있고

사탕껍질이 바스락거린다

잇새로 빠져나와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받아 적을 수 없는 소리

파란색을 좋아하는 나는

물총새 깃털을 덮고 잠든다

멸종에 임박한 이유는 오직 아름답기 때문

핀셋이 나를 들어올리고

길이 든 가위가 살을 북, 찢으며 들어간다

기원에 대한 해설은 유추 가능한 외국어로 쓰여 있다

따옴표 속 고어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오랜 세월 파랑은 고결함이었고 다른 대륙에 이르러 불온함이 되었다

존재하지 않던 한 끝 열릴 때

나, 아름다운 부채가 되기

열망은 그곳에서 끝난다

 

<채윤희>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1995년 부산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과 졸업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력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나아가 찰라적 순간을 자신의 삶에 대한 사유로

길어오는 기량도 믿음직하다

(정호승 시인, 조강석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