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서 순 태
나무가 나무를 모르고 / 이규리
공원 안에 있는 살구나무는 밤마다 흠씬 두들겨맞는다
이튿날 가보면 어린 가지들이 이리저리 부러져 있고
아직 익지도 않은 열매가 깨진 채 떨어져 있다
새파란 살구는 매실과 매우 흡사해
으슥한 밤에 나무를 때리는 사람이 많다
모르고 때리는 일이 맞는 이를 더 오래 아프게도 할 것이다
키 큰 내가 붙어 다닐 때 죽자고 싫다던 언니는
그때 이미 두들겨맞은 게 아닐까
키가 그를 말해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평생
언니를 때린 건 아닐까
살구나무가 언니처럼 무슨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매실나무도 제 딴에 이유를 따로 남기지 않았지만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도 서로 아프고 서로 미안해서,
가까운 것들을 나중에 어느 먼 곳에서 만나면
미운 정 고운 정, 얼싸안고 울지 않을까
‘이 나무열매는 매실이 아닙니다’라고 적어 달앗다가
‘이 나무는 살구나무입니다’라고 바꿔 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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