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 김 경 주

푸른 언덕 2021. 8. 30. 20:39

그림 / 소 순 희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 김 경 주

 

어쩌면 벽에 박혀 있는 저 못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벽 뒤 어둠의 한가운데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허공에 조용히 떠 있는 것이리라

 

바람이 벽에 스미면 못도 나무의 내연(內緣)을 간직한

빈 가지처럼 허공의 희미함을 흔들고 있는 것인가

 

내가 그것을 알아본 건

주머니 가득한 못을 내려놓고 간

어느 낡은 여관의 일이다

그리고 그 높은 여관방에서 나는 젖은 몸을 벗어두고

빨간 거미 한 마리가

입 밖으로 스르르 기어나올 때까지

몸이 휘었다

 

못은 밤에 몰래 휜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

자기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김경주 시인 약력

* 시인, 희곡 작가

* 1976, 07, 14 (광주)

*데뷔, 2003년 대한 신춘문예 "꽃 피는 공중전화"등단

* 학력, 서강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