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 선 희
달빛 문장 / 김 정 임
운주리 목장에 달이 뜨자
쇠똥구리 한 마리 길 떠나기 시작하네
제 몸보다 수십 배 무거운 쇠똥을 빚어서
온몸으로 굴려서 가네
작은 몸이 힘에 겨워 쇠똥에 매달려 가는 것 같네
문득 멈추어 달빛을 골똘히 들여다보네
달빛 아래서만 제 길을 찾는 두 눈이 반짝이네
마치 달빛 문장을 읽는 것 같이 보이네
무슨 구절일까 밑줄 파랗게 그어가며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가네
갑옷 속의 붉은 심장이 팔딱팔딱 뛰네
어느 날 내게 보여준 네 마음에
밑줄 그으며 몇 번씩 읽어내려 가던
눈부신 순간이 생각났네
맑은 바람 한 줄기가 쇠똥구리 몸 식혀주네
태어나고 죽어야 할 집 한 채 밀고 가네
드넓은 벌판에 아름다운 집 한 채 밀고 가네
그날 네 마음이 내 안에서 자라
꿈틀꿈틀 내 몸을 밀고 가네
김정임 시집 / 달빛 문장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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