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달빛 문장 / 김 정 임

푸른 언덕 2021. 7. 15. 17:17

그림/ 이 선 희

 

달빛 문장 / 김 정 임

운주리 목장에 달이 뜨자

쇠똥구리 한 마리 길 떠나기 시작하네

제 몸보다 수십 배 무거운 쇠똥을 빚어서

온몸으로 굴려서 가네

작은 몸이 힘에 겨워 쇠똥에 매달려 가는 것 같네

문득 멈추어 달빛을 골똘히 들여다보네

달빛 아래서만 제 길을 찾는 두 눈이 반짝이네

마치 달빛 문장을 읽는 것 같이 보이네

무슨 구절일까 밑줄 파랗게 그어가며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가네

갑옷 속의 붉은 심장이 팔딱팔딱 뛰네

어느 날 내게 보여준 네 마음에

밑줄 그으며 몇 번씩 읽어내려 가던

눈부신 순간이 생각났네

맑은 바람 한 줄기가 쇠똥구리 몸 식혀주네

태어나고 죽어야 할 집 한 채 밀고 가네

드넓은 벌판에 아름다운 집 한 채 밀고 가네

그날 네 마음이 내 안에서 자라

꿈틀꿈틀 내 몸을 밀고 가네

김정임 시집 / 달빛 문장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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