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들 / 심 보 선
나는 즐긴다
장례식장의 커피처럼 무겁고 은은한 의문들을:
누군가를 정성 들여 쓰다듬을 때
그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서글플까
언젠가 누군가를 환영할 준비가 된 고독은
가짜 고독일까
일촉즉발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삶은
전체적으로는 왜 지루할까
몸은 마음을 산 채로 염(殮) 한 상태를 뜻할까
내 몸이 자꾸 아픈 것은 내 마음이 원하기 때문일까
누군가 서랍을 열어 그 안의 물건을 꺼내먼
서랍은 토하는 기분이 들까
내가 하나의 사물이라면 누가 나의 내면을
들여다봐줄까
층계를 오를 때마다 왜 층계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까
숨이 차오를 때마다 왜 숨을 멎고 싶은 생각이 들까
오늘이 왔다
내일이 올까
바람이 분다
바람이여 광포해져라
하면 바람은 아니어도 누군가 광포해질까
말하자면 혁명은 아니어도
혁명적인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또 어떤 의문들이 남았을까
어떤 의문들이 이 세계를 장례식장의 커피처럼
무겁고 은근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또 어떤 의문들이 남았기에
아이들의 붉은 입술은 아직도 어리둥절하고
끝없이 옹알댈까
시집 : 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 지성>
의문들에 나타난 의문과 호기심은 홀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 앞에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있을 때
생기는 질문들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질문 하나를 던진다
살아있는 순간들이 지루할 때가 언제일까?
우리는 왜 살고 있는지?
누군가 앞에서 가면처럼 웃고 있지는 않는지?
가면 뒤의 고독을 보았는지?
누가 나의 내면을 들여다 봐줄까?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고독과 사랑에 주목을 한다.
*심보선 시인 약력
1970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 졸업
미국 콜롬비아 대학 사회학 박사
1994년 "풍경" 신춘문예, 등단
2008년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첫 시집>
2011년 눈앞에 없는 사람 <두 번째 시집>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함
*나에게는 세 가지 수수께끼가 있다
영혼이라는 수수께끼, 예술이라는 수수께끼,
공동체라는 수수께끼다.
이 수수께끼는 내 시에도 나오고, 내 논문에도
등장한다. 알려 해도 알 수 없지만 알고 싶은 마음을
그칠 수 없는 화두들이다.
이 화두들을 붙잡고 죽을 때까지 쓰고 싶다.
나는 여전히 기적을 소망한다.
심보선 시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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