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의문들 / 심보 선

푸른 언덕 2021. 1. 8. 16:12

 

의문들 / 심 보 선

나는 즐긴다

장례식장의 커피처럼 무겁고 은은한 의문들을:

누군가를 정성 들여 쓰다듬을 때

그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서글플까

언젠가 누군가를 환영할 준비가 된 고독은

가짜 고독일까

일촉즉발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삶은

전체적으로는 왜 지루할까

몸은 마음을 산 채로 염(殮) 한 상태를 뜻할까

내 몸이 자꾸 아픈 것은 내 마음이 원하기 때문일까

누군가 서랍을 열어 그 안의 물건을 꺼내먼

서랍은 토하는 기분이 들까

내가 하나의 사물이라면 누가 나의 내면을

들여다봐줄까

층계를 오를 때마다 왜 층계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까

숨이 차오를 때마다 왜 숨을 멎고 싶은 생각이 들까

오늘이 왔다

내일이 올까

바람이 분다

바람이여 광포해져라

하면 바람은 아니어도 누군가 광포해질까

말하자면 혁명은 아니어도

혁명적인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또 어떤 의문들이 남았을까

어떤 의문들이 이 세계를 장례식장의 커피처럼

무겁고 은근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또 어떤 의문들이 남았기에

아이들의 붉은 입술은 아직도 어리둥절하고

끝없이 옹알댈까

 

시집 : 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 지성>

의문들에 나타난 의문과 호기심은 홀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 앞에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있을 때

생기는 질문들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질문 하나를 던진다

살아있는 순간들이 지루할 때가 언제일까?

우리는 왜 살고 있는지?

누군가 앞에서 가면처럼 웃고 있지는 않는지?

가면 뒤의 고독을 보았는지?

누가 나의 내면을 들여다 봐줄까?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고독과 사랑에 주목을 한다.

 

*심보선 시인 약력

1970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 졸업

미국 콜롬비아 대학 사회학 박사

1994년 "풍경" 신춘문예, 등단

2008년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첫 시집>

2011년 눈앞에 없는 사람 <두 번째 시집>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함

*나에게는 세 가지 수수께끼가 있다

영혼이라는 수수께끼, 예술이라는 수수께끼,

공동체라는 수수께끼다.

이 수수께끼는 내 시에도 나오고, 내 논문에도

등장한다. 알려 해도 알 수 없지만 알고 싶은 마음을

그칠 수 없는 화두들이다.

이 화두들을 붙잡고 죽을 때까지 쓰고 싶다.

나는 여전히 기적을 소망한다.

심보선 시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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