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김 정 수 <작품>
호박에 관하여 / 이 효
벽 같은 영감탱이라고
밤낮 소리 질렀는데
그래도 못난 마누라 배 나왔다고
등 받쳐주는 건 당신뿐이구려
내 손바닥 거칠다고
손 한 번 잡아주지 않더니
간밤에 슬며시 까칠한 잎
담장 위에 올려놓은 건 당신뿐이구려
이웃집 늙은 호박 누렇게 익어
장터에 팔려 나갔는데
시퍼렇게 익다만 내게
속이 조금 덜 차면 어떠냐고
한 번 맺은 인연 끈지 말자며
투박한 말 건넨 건 당신뿐이구려
둥근 호박 메달은 긴 목
바람에 끊어져 나갈까 봐
몸에 돌을 쌓고 흙을 발라서
바람 막아주는 건 당신뿐이구려
영감, 조금만 참아주시오
내 몸뚱이 누렇게 익으면
목줄 끊어져도 좋소
당신을 위해서라면
호박죽이 될망정
뜨거운 가마솥에 들어가리라
늙어서 다시 한번 펄펄 끓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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