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협착의 헤게모니 / 장서영

푸른 언덕 2023. 8. 3. 10:36

 

그림 / 김종수

 

 

 

 

 

협착의 헤게모니 / 장서영

 

 

 

뼈와 뼈 사이가 수상하다

경추의 1번과 5번이 밀착되고

요추에 3번과 4번이 뒤틀렸다

그래서 넓어진 건 통증, 다물어지지 않은 연속성

엉덩이는 의자와 협착하고

마감일은 나와 협착하는데

몸에 담긴 뼈와 말에 담긴 뼈가 서로 어긋나서

삐딱한 시선과 굴절된 자세를 도모한다

책상과 내가 분리되기까지

뼈가 중심이라 생각을 한 번도 못 했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키보드 소리는 경쾌하고 새겨진 문장들은 마냥 과장됐다

어긋남은 순간이었다

뒤돌아보면 한쪽으로 치우친 건 언제나 나였고

오로지 솔직한 건 내 안의 그녀였다

움직이는 팔을 따라

마우스 줄을 따라 고이는 불협

예민해진 신경과 굳어진 근육 사이로

아픔이 비집고 들어와

지금 여기가 버겁게 흘러내렸다

무게 중심이 무기력 쪽으로 기운다

사랑도 관전도 전부 불편하다

결실만 남아 있었는 듯, 처음부터 떠날 사람이 떠났다는 듯

연애에 관한시는 끝내 완성을 거부했다

난 이제 누구와도 협착할 수 없는데

너 하나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절망이라는 단어가 재빨리 들러붙었다

 

 

 

 

<모던 포엠> 2021년 5월호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은 / 박수진  (4) 2023.08.05
책등의 내재율 / 엄세원  (6) 2023.08.04
눈 오는 날 / 이문희  (3) 2023.08.02
한밤중에 / 나태주  (3) 2023.08.01
크루아상 / 윤달  (2) 2023.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