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황혼 / 이육사

푸른 언덕 2023. 6. 15. 18:55

 

그림 / 손기옥

 

 

 

 

황혼 / 이육사

 

 

 

내 골방에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드리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 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 십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 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많은 수인들에게도

의지할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쏘는 토인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히 사라져간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보다

 

 

 

 

*한국시학 봄호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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