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계산동 성당 / 황유원

푸른 언덕 2022. 12. 9. 04:23

 

그림 / 장정화

 

 

 

 

계산동 성당 / 황유원

 

 

요즘엔 침묵만 기르다 보니

걸음까지 무거워졌지 뭡니까

한 걸음 한 걸음 지날 때마다 거기 벽돌이 놓여

뭐가 지어지고 있긴 한데

돌아보면 그게 다 침묵인지라

아무 대답도 듣진 못하겠지요

계산 성당이 따뜻해 보인다곤 해도

들어가 기도하다 잠들면

추워서 금방 깨게 되지 않던가요

단풍 예쁘게 든 색이라지만

손으로 만져도 바스라지진 않더군요

여린 기도로 벽돌을 깨뜨릴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옛 사제관 모형은 문이 죄다 굳게 닫혀 있고

모형 사제관 안에 들어가 문 다 닫아버리고

닫는 김에 말문까지 닫아버리고 이제 그만

침묵이나 됐음 하는 사람이 드리는 기도의 무게는

차라리 모르시는 게 낫겠지요

 

너무 새겨듣진 마세요

요즘엔 침묵만 기르다 보니

다들 입만 열면 헛소리라 하더군요

그러니 한겨울에도 예쁘게 단풍 든 성당은

편안히 미술관에서나 감상하시는 편이 좋겠지요

 

 

 

 

<황유원 시인>

*1982년 울산 출생

*서강대 종교학, 철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2013 문학동네 신인상

*34회 김수영 문학상

*첫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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