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명태 / 박은영

푸른 언덕 2022. 7. 10. 18:05

 

그림 / 한부열

 

 

명태 / 박은영 

 

 

삼천포항 남해식당 메뉴는 생태찌개 한 가지다

 

늙은 여주인은 오늘 팔 한 궤짝의 생선을 육두문자로 손질한다 도마가 움푹 파이도록 칼질을 해도 비린내 나는 바닥 벗어날 길 없다며 어두운 지느러미를 내리친다

 

해로를 잃은 배 한 척, 삼천포 앞바다에 남자를 내어주고 그녀는 오살할 명태를 도마에 올렸다

긁어낸 내장과 대가리를 그러모으는 밤이면 삼천포대교를 건너지 못 한 날 들 이 뚝배기에서 진한 국물로 끓어올랐다 살점을 발라낸 초승달이 눈시울에서 오래 따끔거렸다

 

끼니때가 되자 넘실거리는 식당 안, 창난젓

명란젓 서리젓 사이 곰삭은 욕을 밥술에 얹어먹는 간간한 하루, 싱거운 농담들은 삼천포로 빠지고 닻을 올린 손님상마다 뱉어낸 토막 뼈가 수북하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생이다

 

칼바람 부는 남해식당 앞, 한 소쿠리의 가시가 삼천포 일대 길고양이를 키운다

 

 

 

박은영 시집 /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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