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미래가 쏟아진다면 / 김소연

푸른 언덕 2022. 6. 18. 19:15

 

그림 / 송세라

 

 

 

미래가 쏟아진다면 / 김소연

 

 

나는 먼 곳이 되고 싶다

 

철로 위에 귀를 댄 채

먼 곳의 소리를 듣던 아이의 마음으로

 

더 먼 곳이 되기 위해선 무얼 해야 할까

꿈속이라면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악몽을 꾸게 될 수도 있다

 

몸은 자꾸 나침반 바늘처럼 떨리는 아이가 되어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봐 괴로워하면서

몸이 자꾸 깃발처럼 펄럭이는 아이가 되어

어리석은 사랑에 빠졌을까 봐 괴로워하면서

 

무녀리로 태어나 열흘을 살다 간

강아지의 마음으로

그 뭉근한 체온을 안고 무덤을 만들러 가는

아이였던 마음으로

꿈에서 깨게 될 것이다

 

울지 마, 울지 마

라며 찰싹찰싹 때리던 엄마가 실은

자기가 울고 싶어 그랬다는 걸

알아버린 아이가 될 것이다

 

그럴 때 아이들은 여기에 와서

모르는 사람에게 손을 흔든다

 

꿈이라면 잠깐의 배웅이겠지만

불행히도 꿈은 아니라서 마중을 나온 채

 

그 자리에서 어른이 되어간다

마침내 무엇을 기다리는지 잊은 채로

 

지나가는 기차에 손을 흔들어주는

새까만 아이였던 마음으로

 

지금 나는 지나가는 기차가 되고 싶다

 

목적 없이도 손 흔들어주던 아이들은

에디에고 있다는 걸 알고 싶다

 

 

 

 

 

김소연 시집 / 수학자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