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최신애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 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
내 뒤에 놓인 물그릇이 자꾸 쏟아져요
이게 다 등껍질이 얇고 연약해서 그래요
그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사랑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어요
발전에 끝이 없죠
매일 김포로 도망가는 상상을 해요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이원하 시집 /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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