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도마의 구성 / 마경덕

푸른 언덕 2022. 5. 3. 21:39

그림 / 이철규

 

도마의 구성 / 마경덕

나무도마에게 딸린 식구는

혼자 사는 여자와 칼 하나

닭집 여자는 칼에게 공손하고 칼은 도마를 얕본다

서열은 칼, 여자, 도마

도마는 늙었고 칼은 한참 어리다

칼받이 노릇에 잔뼈가 물러버린 도마는

칼 하나와 애면글면

둘 사이에 죽은 닭이 끼어들면 한바탕 치고 받는다

내리치는 서슬에 나이테가 끊어지고

이어 찬물 한 바가지 쏟아진다

닭이 사라져도 도마를 물고 있는 칼

칼은 언제나 도마 위에서 놀고

도마는 칼집투성이다

이 조합은 맞지 않아요

도마가 애원해도 여자는 늘 도마를 무시하고

칼은 여전히 버릇이 없다

어디서 굴러온 막돼먹은 칼을 여자는 애지중지 받는다

 

마경덕 시집 /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이재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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