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이철규
도마의 구성 / 마경덕
나무도마에게 딸린 식구는
혼자 사는 여자와 칼 하나
닭집 여자는 칼에게 공손하고 칼은 도마를 얕본다
서열은 칼, 여자, 도마
도마는 늙었고 칼은 한참 어리다
칼받이 노릇에 잔뼈가 물러버린 도마는
칼 하나와 애면글면
둘 사이에 죽은 닭이 끼어들면 한바탕 치고 받는다
내리치는 서슬에 나이테가 끊어지고
이어 찬물 한 바가지 쏟아진다
닭이 사라져도 도마를 물고 있는 칼
칼은 언제나 도마 위에서 놀고
도마는 칼집투성이다
이 조합은 맞지 않아요
도마가 애원해도 여자는 늘 도마를 무시하고
칼은 여전히 버릇이 없다
어디서 굴러온 막돼먹은 칼을 여자는 애지중지 받는다
마경덕 시집 /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이재호 갤러리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운사 / 민병도 (0) | 2022.05.05 |
---|---|
제왕나비 / 최동호 (0) | 2022.05.05 |
후회 / 나태주 (0) | 2022.05.02 |
심장을 켜는 사람 / 나희덕 (0) | 2022.05.01 |
창밖은 오월인데 / 피천득 (0) | 2022.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