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진옥
종을 만드는 마음으로 / 이어령
대장장이가 범종을 만들듯이
그렇게 글을 써라.
온갖 잡스러운 쇠붙이를 모아서 불로 녹인다.
무디고 녹슨 쇳조각들이 형체를 잃고 용해되지 않으면
대장장이는 망치질을 못한다.
걸러서는 두드리고 두드리고는 다시 녹인다.
그러다가 쇳조각은 종으로 바뀌어
맑은 목청으로 운다.
망치로 두드릴 때의 쇳소리가 아니다.
사냥꾼이 한 마리의 꿩을 잡듯이 그렇게 글을 써라.
표적을 노리는 사냥꾼의 총은
시각과 청각과 촉각과 그리고 후각의
모든 감각의 연장(延長)이고 연장(道具)이다.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숨는 것을 향해 쏘아야 한다.
또 돌진해 오는 것들을 쏘아야 한다.
표적에서 빗나가는 사냥꾼은 총대를 내리지 않고
또다른 숲을 향해 달려간다.
목수들이 집을 짓는 마음으로 글을 써라.
오랜시간이 지난 다음, 집이 제 모습으로 완성되면
목수들은 연장을 챙긴다.
살 수도 없는 집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못질하고 대들보를 올린다.
그래도 목수는 자기가 만든 집이
자기 집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만들면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글을 쓰되 종으로 만드는 대장장이처럼,
쇠로 쇠의 성질을 바뀌게 하고
글을 쓰되 꿩을 잡는 사냥꾼처럼 민첩하고 사납거라.
그러나 글을 쓰되, 목수처럼 다 쓰거든 떠나라.
남들 그곳에서 먹고 자고 일하도록
그 대문 열쇠를 넘겨주거라.
이어령 시집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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