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홀로 죽기 / 문정희

푸른 언덕 2022. 2. 2. 18:27

그림 / 김지향

 

홀로 죽기 / 문정희

골목길을 걷다 그만 흙탕물에 빠졌다

어차피 산뜻하게 건너기는 틀렸다

한참을 허우적이다

아예 첨벙첨범 온몸에 진흙을 묻히었다

문득 생이 환한 들판이로다

진흙 없이는 꽃도 없으니

한번 뒹구는 일 가상하도다

분명한 것은 탄탄대로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목표는

홀로 서기가 아니다

홀로 죽기!

입에 꺼내 발음하고 나니

이상한 힘이 몰려온다

굴욕과 인내로 모은 훈장과 졸업장들

살 속에 남은 사랑의 흉터들

이제는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새벽닭이 울건 말건 모두 버리노니

진흙 냄새 사방에 향기로운

털끝마다 햇살이 물결친다

 

 

문정희 시집 / 나는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