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도플갱어 / 김 이 듬

푸른 언덕 2021. 12. 23. 18:37

그림 / 김 정 수

 

도플갱어 / 김 이 듬

나는 투표소에 가는 사람

주민등록증 가지러 도로 와서는 안 나가는 사람

내가 믿는 바를 스스로 믿지 못하는 사람

나는 검은 코트를 입고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사람

거침없이 말하며 후회하기를 타고난 사람

나는 슬리퍼 끌고 편의점에서 술을 사는 한밤중 바코드의 사람

나는 도로 위에 흰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려진 사람

빈둥거리며 지척에 흩날리는 나

꿈에 늑대를 타고 달리지만 대부분 걸어 다니는 사람

음악이 없으면 금방 다리가 아픈 사람

죽느냐 사느냐 고뇌하는 사람들의 성장기를 거치지 않고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망설임조차 결여된 사람

정부는 출산여성에게 인센티브를 준다는데, 그깟 놈들 말 듣지 않는 사람

나는 콩나물해장국을 마구 퍼먹는 사람

대가리 떨어지고 뿌리도 시들시들 말라가는 사람

내가 던진 막대기를 물고 뛰어오는 사람

공원에서 주운 개목걸이에 딸린

 

*김이듬 시인 2021년, 영화 "벌새" 올해의 양성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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