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정 화 숙
나희덕 시집 / 사라진 손바닥
붉디붉은 그 꽃을 / 나 희 덕
산그늘에 눈이 아리도록 피어 있던 꽃을
어느새 나는 잊었습니다
검게 타들어가며 쓰러지던 꽃대도,
꽃대도 받아 삼키던 흙빛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바위에 남겨진 총탄자국도,
꽃 속에 들리던 총성도,
더는 내 마음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 다, 잊었습니다, 잊지 않고는
그의 잎으로 피어날 수 없어
상상화인지 꽃무릇인지 이름조차 잊었습니다
꽃과 잎이 서로의 죽음을 볼 수 없어야
비로서 피어날 수 있다기에
붉디붉은 그 꽃을 아주 잊기로 했습니다
나희덕 시집 / 사라진 손바닥
사진 / 정 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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