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신춘문예 6

벽 / 추성은(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 ​ ​ ​ 벽 / 추성은 (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 ​ 죽은 새 그 옆에 떨어진 것이 깃털인 줄 알고 잡아본다 알고 보면 컵이지 ​ 깨진 컵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새를 파는 이들은 새의 발목을 묶어둔다 ​ 날지 않으면 새라고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척 새를 산다고, 연인은 말한다 나는 그냥 대답하는 대신 옥수수를 알알로 떼어내서 길에 던져 두었다 뼈를 던지는 것처럼 ​ 새가 옥수수를 쪼아 먹는다 ​ 몽골이나 오스만 위구르족 어디에서는 시체를 절벽에 던져둔다고 한다 바람으로 영원으로 깃털로 돌아가라고 ​ 애완 새는 컵 아니면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 천장 차라리 그런 것들에 가깝다 ​ 카페에서는 모르는 나라의 음악이 나오고 있다 언뜻 한국어와 비슷한 것 같지만 아마 표기는 튀르크어와 가..

조퇴 / 강희정

그림 / 안려원 조퇴 / 강희정 드르륵 교실문 열리는 소리 슨상님 야가 아침만 되믄 밥상머리에서 빗질을 했산단 말이요 긴 머리카락 짜르라 해도 안 짜르고 구신이 밥 달라 한 것도 아니고 참말로 아침마다 뭔 짓인지 모르것어라 킥킥 입을 가리고 웃어 대는 책상들 아버지는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낮술이 뺀질뺀질 빨갛게 웃고 있는 4교시 수업 시간 덩달아 붉어진 내 얼굴은 밖으로만 내달리고 싶어 아버님 살펴가세요 어서가세요 얘들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일찍 점심 먹고 운동장 나가 놀아라 나보다 먼저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 선생님 달걀 프라이가 들국화처럼 피어 있는 생일 도시락이 아버지 손을 잡고 산들산들 집으로 걸어간다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 최금진

그림 / 이율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 최금진 혓바닥으로 붉은 장미를 피워 물고 조심조심 담장을 걷는 언어의 고양이 깨진 유리병들이 거꾸로 박힌 채 날 선 혓바닥을 내미는 담장에서 줄장미는 시뻘건 문장을 완성한다 경사진 지붕을 타 넘으면 세상이 금세 빗면을 따라 무너져 내릴 것 같아도 사람은 잔인하고 간사한 영물 만약 저들이 쳐놓은 포회틀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구름으로 변장하여 빠져나올 것이다 인생무상보다 더 쉽고 허무한 비유는 없으니 이 어둠을 넘어가면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달덩이가 있다 거기에 몸에 꼭 맞는 둥지도 있다 인간에게 최초로 달을 선사한 건 고양이 비유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 흰 접시 위에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 올려놓는다 언어는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하늘로 달아..

제왕나비 / 최동호​

그림/ 박정용 ​ ​ ​ 제왕나비 / 최동호 ​ ​ 파도 위로 호랑무늬 깃을 펼치며 대지를 움켜진 나비가 날고 있다 대양 너머 저 멀고 먼 산언덕에서 작은 들꽃 무리들이 피었다 지면서 비바람 헤치고 찾아올 나비를 기다리고 구름 뒤의 달은 나뭇잎에 매달려 쪽잠 자며 고치에서 부활하는 영혼을 지켜보고 있다 ​ ​ ​ 전문 ​ ​ *최동호 -1948년 경기 수원 출생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박두진 문학상 수상 ​ ​ ​

바구미를 죽이는 밤 / 문성해

그림 / 문 경 조 ​ ​ ​ ​ 바구미를 죽이는 밤 / 문성해 ​ ​ ​ 처음엔 작은 활자들이 기어 나오는 줄 알았다 신문지에 검은 쌀을 붓고 바구미를 눌러 죽이는 밤 턱이 갈라진 바구미들을 처음에는 서캐를 눌러 죽이듯 손톱으로 눌러 죽이다가 휴지로 감아 죽이다가 마침내 럭셔리하게 자루 달린 국자로 때려 죽인다 죽음의 방식을 바꾸자 기세 좋던 놈들이 주춤주춤, 죽은척 나자빠져 있다가 잽싸게 도망치는 놈도 있다 놈들에게도 뇌가 있다는 것이 도무지 우습다 ​ 혐오의 죄책감도 없이 눌러 죽이고 찍어 죽이고 비벼 죽이는 밤 그나저나 살해가 이리 지겨워도 되나 고만 죽이고 싶다 해도 기를 쓰고 나온다 이깟 것들이 먹으면 대체 얼마를 먹는다고 쌀 한 톨을 두고 대치하는 나의 전선이여 아침에는 학습지를 파는 전화와..

이 시각 주요 뉴스 (신춘 문예)

Jakob Owens / Unsplash 이 시각 주요 뉴스 / 최인호 (2019,동아일보) ​ 매미가 날개를 말리고 있었다 거리에 팔짱 낀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어제는 비가 왔었다 부동산 시장은 계속해서 커지고 정부는 수목장을 권장했다 ​ A는 올해로 칠 년째 울고 있다 그동안 강아지가 실종되었고 A는 우느라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A의 창밖으로 비가 내렸다 빗소리가 거세져 A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멜로'라는 말은 '적당한 온도의 눈물'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뻥입니다 애써 줄여놓은 바지통을 다시 뜯어내야 했습니다 영화가 몇 편 개봉했습니다 네, 멜로입니다 짓궂어졌습니다 ​ 우리는 우울한 날 요가를 하는 사람들 티비 앞에서 내가 어떤 자세인지도 잊어버리는 그저 그런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