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수평선 6

바닷가 / 오세영

그림 / 신범승 바닷가 / 오세영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시집 /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고래가 일어서다 / 김은수

그림 / 김예순 고래가 일어서다 / 김은수 일상이 싱거워졌다. 바람 부는 날 바다는 고래가 된다 태풍이 불면 힘차게 일어서는 고래 수평선 넘어 잊었던 기억 등에 지고 성큼 타가서는 맷집에 모래사장은 오줌을 지리고 있다 고래가 날 세워 호통친다 바람을 맞잡고 일어서는 거품들 헤진 옷깃 깊숙이 젖어든다 순간 짠맛에 길들여진 고래 뱃속에서 일상이 속속 숨죽이며 벌떡 일어섰다. 2020 인사동 시인들 14호

바닷가에 대하여 / 정 호 승

그림 / 이 효 경 ​ ​ ​ 바닷가에 대하여 / 정 호 승 ​ ​ ​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

추암에서 / 나 호 열

​ ​ ​ ​ 추암에서 / 나 호 열 ​ ​ ​ 바다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공손해진다. 어떤 거만함도, 위세도 멀리서 달려와 발 밑에 부서지는 포말에 불과한 것임을 모르는 채 깨닫게 된다. 바다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공손해진다. 보지 않으려해도 볼 수 밖에 없는 수평선을 보며 위태로운 줄타기의 광대가 되는 자신을 떠올리거나 수평선의 끝을 잡고 줄넘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 무의식적으로 손을 길게 내밀어 고무줄처럼 수평선을 끌어당기고 싶다면 아직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다. 좀 더 살아야하는 것이다. ​ ​ ​ 그림 / 김 경 미

신지도 / 이 효

그림 / 김 건 순 ​ ​ ​ 신지도 / 이 효 더위를 업고 달려간 신지도 수평선 위 작은 섬 하나 거울 앞에 홀로 선 내 모습 같구나 뜨거운 여름, 또 다른 섬 하나 두 다리를 오므리고 누운 모습 생명을 품은 여인의 신비한 몸 같구나 볼록한 섬이 갈라지더니 해가 오른다 얼마나 간절히 소망했던 생명인가 섬이 터트린 양수는 남해를 가득 채운다 철썩거리는 분침 소리 섬은 새벽 진통을 마치고 고요하다 하늘 자궁문이 열린 자리에는 수만 송이의 동백꽃이 피어오른다 고통의 주머니에서 꺼낸 한여름의 꿈이 화안하다 ​ ​ ​

바닷가에서 / 오세영

​ 바닷가에서 / 오세영 ​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있다 ​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