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불꽃 2

어떤 出土 / 나 희 덕

그림 / 김 소 영 ​ ​ ​ 어떤 出土 / 나 희 덕 ​ ​ ​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는데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 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춧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 ​ 가을갈이를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 호박은 온데간데 없다 불꽃도 흙 속에 잦아든 지 오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는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의 죽음을 덮고 있는 관뚜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 한 웅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 ​ ​ ​ ​ 나희덕 시집 / 사라진 손바닥 ​ ​ ​ ​ ​ ​ ​

장미를 사랑한 이유 / 나 호 열

그림 : 김 정 수 ​ ​ 장미를 사랑한 이유 / 나 호 열 ​ 꽃이었다고 여겨왔던 것이 잘못이었다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이 고통이었다 슬픔이 깊으면 눈물이 된다 가시가된다 눈물을 태워 본 적이 있는가 한철 불꽃으로 타오르는 장미 불꽃의 심연 겹겹이 쌓인 꽃잎을 떼어내듯이 세월을 버리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처연히 옷을 벗는 그 앞에서 눈을 감는다 마음도, 몸도 다 타버리고 난 후 하늘을 향해 공손히 모은 두 손 나는 장미를 사랑한다 ​ ​ *나호열 시인 충북 서천 출신 (1954) 경희대 대학원 철학(박사) 졸업 시집 : 이 세상에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있다 당신에게 말걸기 타인의 슬픔 안녕, 베이비 박스 수상 : 중견 신인상 (1986) 녹색 신인상 (2004) 한민족 문학상 (2007)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