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김 소 영 어떤 出土 / 나 희 덕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는데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 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춧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 가을갈이를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 호박은 온데간데 없다 불꽃도 흙 속에 잦아든 지 오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는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의 죽음을 덮고 있는 관뚜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한 웅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 나희덕 시집 / 사라진 손바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