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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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뺨을 쳤다 / 정일근​​

그림 / 진옥 ​ ​ 물의 뺨을 쳤다 / 정일근 ​ ​ 산사서 자다 일어나 물 한 잔 떠먹었다 산에서 흘러 돌확에 고이는 맑은 물이었다 물 마시고 무심코 바가지 툭, 던졌는데 찰싹, 물의 뺨치는 소리 요란하게 울렸다 돌확에 함께 고인 밤하늘의 정법과 수많은 별이 제자리를 지키던 율이 사라졌다 죄였다, 큰 죄였다 법당에서 백여덟 번 절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물의 뺨은 퉁퉁 부어 식지 않았다 ​ ​ ​ 정일근 시집 / 소금 성자 ​ ​ *경남 진해 출생 *1985년 신춘문예 당선 *시집 *소금 성자는 열두 번째 시집이다 *경남대학 문과대학 문화콘텐즈학과 교수 ​ ​ ​ 동강

사람에게 묻는다 / 휴틴

그림 / 이 형 미 ​ ​ ​​ 사람에게 묻는다 / 휴틴 ​ ​ 땅에게 묻는다 땅은 땅과 어떻게 사는가? 땅이 대답한다 우리는 서로 존경하지 ​ 물에게 묻는다 물과 물은 어떻게 사는지? 물이 대답한다 우리는 서로 채워주지 ​ 사람에게 묻는다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스스로 한번 대답해 보라 ​ ​ ​ 휴틴(1942~) 베트남 작가, 미국과 전쟁당시 해방군 전사로 참전하여 중령까지 승진한 전쟁영웅이기도하다. 시집 (겨울 편지) 대표 시집 ​ ​ ​ 시집 / 매일 시 한잔 (두 번째) 저자 / 윤동주, 배정애 ​ ​ ​ ​ ​ ​

그릇 6 / 오 세 영

그림 / 김 정 화 2 ​ ​ ​ ​ 그릇 6 / 오 세 영 ​ ​ ​ 그릇에 담길 때 물은 비로소 물이 된다 존재가 된다 잘잘 끓는 한 주발의 물 고독과 분별의 울안에서 정밀히 다져가는 질서 그것은 이름이다 하나의 아픔이 되기 위하여 인간은 스스로를 속박하고 지어미는 지아비에게 빈 잔에 차를 따른다. 엎지르지 마라, 업질러진 물은 불이다 이름없는 욕망이다. 욕망을 다스리는 영혼의 형식이여, 그릇이여 ​ ​ ​ ​ ​​ 모순의 흙 / ​ ​ ​

연꽃 / 오 세 영

그림 : 강 애 란 ​ ​ 연꽃 / 오 세 영 ​ 불이 물속에서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은 연꽃을 보면 안다. 물로 타오르는 불은 차가운 불, 불은 순간으로 살지만 물은 영원을 산다. 사랑의 길이 어두워 누군가 육신을 태워 불 밝히는 자 있거든 한송이 연꽃을 보여 주어라. 닳아 오르는 육신과 육신이 저지르는 불이 아니라. 싸늘한 눈빛과 눈빛이 밝히는 불, 연꽃은 왜 항상 잔잔한 파문만을 수면에 그려 놓는지를 ​ ​ ​ ​

연습이 필요할 때 / 이 남 우

연습이 필요할 때 / 이 남 우 ​ 개불알꽃 사는 일 연습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일 연습이 필요하다 헤어지는 일 연습이 필요하다 죽는 일 빼고 모두 연습이 필요하다 ​ 종지나물(미국 제비꽃) 소나기 내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가 달맞이꽃 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가 물 흐르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한가 바람 부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한가 ​ 로도히폭시스 (설란) ​ ​ 사는 일 한 묶음이면 연습이 필요하지 않겠지 사랑하는 일 한번으로 보면 연습이 필요하지 않겠지 ​ ​ 안개꽃 (숙근 안개초) ​ ​그런데 우리는 항상 연습한다 몸으로 머리로 그리고 되먹지 못한 이성으로 연습의 끝이 어딘지 모르면서 ​ (다만 이미 가버린 시간이라는 사실만 알 뿐) ​​ 노란 민들레 ​ 연습이 필요할 때 / 이 남 우 ​ ​ 사는 일 ..

우리가 물이 되어 / 강 은 교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숮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이 작품은 강은교 시인이 젊은 시절에 쓴 시다. 고달픈 인생에 대해서, 허무한 사랑에 대해서 시인은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이 시를 따라서 읽으면서 ..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