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김 정 수
담장 안의 남자 / 이 효
담장 밖에서 들려오는 수다 소리
남자가 하루 세끼 쌀밥 꽃만 먹는다
내게 말을 시키지 않으면 좋겠어
드라마를 보면 왜 찔찔 짜는지
남자는 억울하단다
죄가 있다면 새벽 별 보고 나가서
자식들 입에 생선 발려 먹인 것
은퇴하니 투명인간 되란다
한 공간에서 다른 방향의 시선들
담장이 너무 높다
기와가 낡은 것을 보니
오랫동안 서로를 할퀸 흔적들
흙담에 지지대를 세운다
나이가 들수록 무너지는 담을
덤덤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자
남자는 거울 속 여자가 낯설다
벽에다 쏟아부었던 메아리
담장 안의 남자와 담장 밖의 여자
장미꽃과 가시로 만나 끝까지
높은 담을 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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