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자작시

담장 안의 남자 / 이 효

푸른 언덕 2021. 5. 12. 20:31

그림 : 김 정 수

담장 안의 남자 / 이 효

 

담장 밖에서 들려오는 수다 소리

남자가 하루 세끼 쌀밥 꽃만 먹는다

내게 말을 시키지 않으면 좋겠어

드라마를 보면 왜 찔찔 짜는지

남자는 억울하단다

죄가 있다면 새벽 별 보고 나가서

자식들 입에 생선 발려 먹인 것

은퇴하니 투명인간 되란다

한 공간에서 다른 방향의 시선들

담장이 너무 높다

기와가 낡은 것을 보니

오랫동안 서로를 할퀸 흔적들

흙담에 지지대를 세운다

나이가 들수록 무너지는 담을

덤덤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자

남자는 거울 속 여자가 낯설다

벽에다 쏟아부었던 메아리

담장 안의 남자와 담장 밖의 여자

장미꽃과 가시로 만나 끝까지

높은 담을 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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