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사과를 먹는다 / 함 민 복

푸른 언덕 2021. 4. 8. 20:13

그림 : 김 옥 선

 

사과를 먹는다 / 함 민 복

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신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마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에서 울던 새소리를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을 먹는다

사과를 연구한 식물학자의 지식을 먹는다

사과나무 집 딸이 바라보던 하늘을 먹는다

사과에 수액을 공급하던 사과나무 가지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세월, 사과나무 나이테를 먹는다

사과나무를 지탱해온 사과나무 뿌리를 먹는다

사과의 씨앗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자양분 흙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흙을 붙잡고 있는 지구의 중력을 먹는다

사과나무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우주를 먹는다

흙으로 빚어진 사과를 먹는다

흙에서 멀리 도망쳐보려다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사과를 먹는다

사과가 나를 먹는다

 

그림 : 정 자 영

사랑하니까 / 용 혜 원

사랑이란

함께 걷는 것이다

멀리 달아나지 않고

뒤에 머물러 있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같이 걷는 것이다.

서로의 높이를 같이하고

마음의 넓이를 같이하고

시련의 고통을 이겨내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까지

둘이 닮아가는 것이다

 

그림 : 최 흔 용

 

사과의 소망 / 반 기 룡

가을 햇살

쪽쪽 빨아들여

똑똑하게 익은

빨간 색깔로

누군가의 입술을

진종일 푹 적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