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는 암보다 무섭다. 환자 당사자의 인격이 황폐화되는 것은 물론, 온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부모가 치매환자로 진단을 받는 순간 가족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치매환자, 길어지는 병수발 기간, 점점 나빠지는 증상들…. 치매환자를 둔 가족이 마주쳐야 하는 고통이다. 노인들에게도 치매는 죽음보다 두려운 질병이다. 치매 노인 자살도 증가하고 있다. 얼마 전엔 치매에 걸린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환자는 9%로 약 54만명이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인 셈이다.
치매 위험이 높은 경도인지장애는 4명 중 1명꼴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치매는 50여 종으로 그중 알츠하이머 치매가 60%, 혈관성 치매가 20~30%, 그 밖의 고칠 수 있는 치매가 10~20% 정도다.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뇌신경센터장)는 "치매는 가족(보호자) 행동과 처신에 따라 '예쁜 치매'와 '미운 치매'로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의 병이라고 할 만큼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미운 치매환자가 있는가 하면, 치매에 걸린 후에도 무리 없이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예쁜 치매환자도 있다는 얘기다. 치매에 걸리기 전 평소 환자 성격이 좋았다면 예쁜 치매가 되는 데 큰 작용을 한다. 평소 긍정적이고 배려를 잘하는 사람은 치매에 걸리더라도 여전히 행동에 그러한 성품이 남기 때문이다. 예쁜 치매는 환자 가족이 '지적'하기보다 따뜻하게 품어줘야 가능하다. 나 교수는 "인지기능이 떨어진 치매환자를 답답하게 여겨 가족이 이것저것 지적하지만 치매환자는 자신의 실수를 기억하지 못한다"며 "지적당한 순간 서운한 감정이 환자에게 남게 되고 이는 미운 치매로 악화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쁜 치매가 될까? 나 교수는 "보호자 태도가 중요하다"며 "보호자부터 눈높이를 낮추라"고 조언했다. 치매는 자신에게 병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대뇌피질에 생기는 질환이다. 그래서 치매환자들은 자신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른다. 아이들은 대뇌피질이 덜 발달해 자기 행동에 대한 분별력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떼를 쓰고 운다. 치매환자가 아이처럼 투정 부리고 좌충우돌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치매환자의 이상행동에 의한 증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했으면 치매환자가 사망했을 때 부모와 자식 간 정나미를 모두 다 떼어놓고 저세상으로 갔다는 말이 나올까. 치매환자는 밤낮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밤새 서성거리고 낮에 잠을 잔다. 밤마다 노래를 부르거나 5분 간격으로 소변을 보거나 가족을 불러낸다. 불결한 행동이 잦아지고 사소한 일에 불같이 화를 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으려고 한다. 쓸데없는 물건이나 음식을 꽁꽁 숨겨두고 찾지 못하면 가족을 의심해 다그치기 일쑤다.
치매 명의로 손꼽히는 한설희 건국대병원장(신경과 전문의)은 "치매환자는 기억력을 비롯한 인지기능 저하가 서서히 진행돼 가며 많은 심리적·감정적 변화를 보인다"며 "감정 변화는 극단적 우울감으로 진행되면서 환자들은 자살을 시도하고, 때로는 심하게 화를 내거나 폭력적으로 행동한다"고 설명했다.
한 원장은 "중등도 이상 치매환자를 돌볼 때는 3~4세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대하라"며 "남아 있는 일상생활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일상생활 수준에 맞는 오락이나 취미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치매환자 행동을 무조건 통제하기보다 주변에 보호막을 두고 그 테두리 안에서 자유를 주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신문지를 보면 찢는 습관을 가진 치매환자라면 오히려 더 많은 신문을 가져다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기에 예쁜 종이를 건네주고 풀칠을 하게 하는 등 보다 창의적인 활동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치매환자에게는 실수를 하더라도 면박을 주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비록 인지능력은 떨어져 있지만 자존심 등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상행동을 보이더라도 크게 반응하는 것보다는 그 자체를 인정하면서 환자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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